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반 4세 (문단 편집) === [[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복|시베리아 개척]]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Russian_Tsardom_1500_to_1700.png|width=90%]] || || 1500년 ~ 1700년 사이의 러시아 영토의 확대. 진한 순서대로 각각 1500년, 1600년, 1700년의 러시아 영토. || 특히 이반 4세가 러시아에 남긴 또 다른 큰 유산은 바로 '''광대한 러시아의 영토'''다. 러시아는 1550년에서 1700년까지 매년 무려 35000㎢씩 영토가 확장되었다. 이것이 카잔 칸국과 아스트라한 칸국 정복 이후 시베리아 진출 때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만약 이반 4세가 없었더라면 러시아의 팽창이 가능했을지는 알 수 없는 부분이다. 분명한 것은 이반 4세의 시기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점이며, 이런 거대한 영토와 인구를 바탕으로 러시아는 이후에 [[초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물론 이 과정에는 [[표트르 대제]]처럼 러시아를 [[근대화]]시켰던 인물이나 [[이오시프 스탈린]]처럼 러시아를 [[산업화]]시킨 인물의 힘이 없었다면 불가능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이들 모두는 '''이반 4세에 의해서 마련된 러시아의 광대한 영토와 인구가 아니었더라면 그 과업을 달성하기는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표트르 대제와 이오시프 스탈린은 업적은 뛰어나지만 선정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에서 이반 4세와 비슷한 인물이기도 하다. 표트로 대제는 농노제를 강화하고 [[샹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반발을 억누르는 등 선정과는 거리가 멀었고, 스탈린도 소련을 세계 2위 경제대국 겸 초강대국으로 만들고 독일군을 패퇴시키다 못해서 동유럽과 중앙유럽 지역을 소련의 위성국들로 채워넣는 업적을 세웠지만 [[우크라이나 대기근]] 및 [[대숙청]] 항목에서도 보이듯, 관료로써 재능이 뛰어났고 관료제를 완성시킨 것과는 별개로 인품이 훌륭하거나 선한 인물은 결코 아니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반 4세는 현재의 [[러시아]]를 만든 군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이반 4세에 대한 이해 없이는 러시아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해석하기 애매한 여러가지 기행이나 잔인성에도 불구하고 이반 4세의 행동과 정책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현대의 러시아 역사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그의 숙청과 학살이 전제 권력을 확립하기 위한 의도된 잔인한 숙청이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미쳐서 그랬는지, 그리고 리보니아 전쟁은 서방으로의 나가는 길을 확보하기 위한 계획적인 전쟁이였는지 아니면 여기서 질 수 없다는 오기의 결과였는지는 등 쉽게 해석되기는 어려운 부분이 아직도 많이 있다. 그리고 이반 4세를 선뜻 러시아의 위대한 차르라고 부르기에는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는 행동을 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지금도 그 업적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상당히 평가가 갈리는 것도 사실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